반유하는 일상
최반유
2020. 8. 31. 07:02
[반유하는일상] 인생의 1/3쯤 와서 고민하는 것 (1)일, 업무, 경제활동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업무는 하반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놀고 먹는 월급 루팡 같은 걸 떠올리면 안된다.
상반기는 신고 마감의 연속으로, 야근을 하는 날이 하지 않는 날보다 많다.
하반기는 제시간에 퇴근할 수 있는 날이 그나마 대부분이라는 의미다.
이렇게 내 시간을 많이 주고 월급과 바꾸는 일은 왜인지 부당한 기분이 자꾸만 들어,
내 인생의 40대부터는 무언가 다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고민이 커지는 요즘.
나는 왜 이 일을 하게 되었고, 벗어나지 못하고 있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일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하는 것이 맞겠다.
월급과 내 일상의 8시간 이상을 맞바꾸기 시작한 건 스물 한 살 부터다.
처음엔 아무런 기술도, 숙달된 경험도 없었기에 그저 단순업무를 반복하는 일을 하며 적은 월급을 받았다.
그것이 못마땅했던 어머니는 늘 나에게 회계 자격증을 딸 것을 권유했고, 가끔 강요했다.
고등학교 시절 즐겁게 공부하고 점수가 높았다는 이유로 자격증을 따는 데 어려움은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회계로 밥을 벌어먹고 살다니,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마침내 다니던 직장에서 내 개인사정을 봐주지 않고 간단한 수술을 하고 주말만 쉰 뒤 출근하라는 결론을 받았을 때,
나는 퇴사를 결정했고, 손에 쥔 회계 자격증 두 개로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했었다.
자격증을 들고 처음 들어간 곳은 세무법인으로, 은퇴한 세무서 과장이었던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텃새와 괄시와 구박을 하루도 쉬지 않고 받았고,
복장 규제와 업무 외 잡무를 도맡으면서, 눈치껏 어깨너머로 일을 배워 내 업체의 일을 처리해야 했다.
늘 테스트받듯 불시에 질문을 받았고, 대답하지 못하면 비난을 들었으며,
무언가를 물어보면 '여기는 학원이 아니다'라는 비아냥을 차가운 얼굴과 함께 들어야했고,
업무처리에 관한 제대로 된 메뉴얼이나 인수인계 없이 일하면서도, 무언가를 묻는 것이 죄스러울 정도로 그들은 나의 '경험없음'을 힐난했다.
그 중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가끔 대표와 함께하는 식사자리에선 막내라는 이유만으로 옆자리에 앉는 것이었는데,
물컵의 물양이 적당한지, 대표가 좋아하는 반찬이 멀진 않은지를 밥먹는 내내 걱정하고,
식당을 나서는 순간까지 대표의 구두와 이쑤시개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그 곳의 시스템을 운영하는 대표와, 4명뿐인 사무실의 선임들이 만든 합작품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고,
나에게 필요한 경력이 쌓일 때까지 버텨보고자 다짐했던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 덩그러니 앉아 소리내어 우는 날이 많아졌다.
마침내 3년을 채우는 것은 스스로를 학대하는 일이라 결론을 내리고, 2년 반만에 사직서를 내기로 결심했다.
사직서를 내고도 두 달 동안 인수인계를 핑계로 그 곳을 나오지 못했던 나는 두 번 다시 회계사무실에 발을 들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연말이라는 이유로 한 달 동안 미친듯이 사람을 만나고 놀러 다닌 뒤, 경력을 살려 재단법인 회계팀에 들어갔다.
사회복지를 기반으로 하는 업체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이 나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공익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즐거움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호감으로 출근이 즐거워졌다.
돈이 없어 몸으로 떼워야하는 행사가 많았지만, 회계직 특성상 그것을 내가 채우는 일은 드물었다.
요구하는 것 이상의 업무처리능력이 있다는 것에 기뻐할 수 있었던 유일한 3년이었다.
그러나 잠시의 행복도 지나가고, 대표가 바뀌고 직원들의 월급을 조정하여 자신의 월급을 더 많이 받으려는 그를 말릴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보조금으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울 수 있는 서류들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원리원칙으로 그를 설득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나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에 지쳐갔다.
마침내 부조리한 일을 요구하는 대표 밑에서는 일할 수 없다는 결론과 함께, 고소를 진행하기 위한 증거들을 수집하여 그 곳을 퇴사했다.
그마저도 사회적 파장이 클 것이며,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모두 실직자가 될 수 있다는 변호사의 말에 접었지만.
내 인생에서 직업으로 가장 큰 고민은 이 때 시작되었다.
말도 안되는 텃새와 근본없는 시스템을 가진 회계사무실을 다시 갈 것인지,
사장이 부조리한 것을 요구해도 눈을 감고 처리할 수 있는 마음으로 일반업체를 갈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이력서를 낼 수 있는 곳은 이 두가지 선택지밖에 없어보였다.
지금 나는 회계법인 기장부에서 일한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답을 찾는 법을 알게 된 내가, 결산 경력 3번의 좁은 시야를 원리원칙대로 처리하는 회계로 넓혀준 곳.
우리는 일을 선택하는 데 있어 얼마만큼의 고민을 할까.
명확한 목표와 방향을 가지고 시작하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나와 내 주변에 그런 케이스는 몹시 드물다.
많은 사람들이 10대를 지나오면서 가까운 사람들의 분위기나 환경 영향을 많이 받으며, 신뢰하는 타인들이 선호하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하게 된다.
한 번 일을 경험하고, 같은 분야에서 경력이 5년 이상 쌓이면 다른 업종으로 이직은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하다.
다른 일을 하기엔 너무 멀리 온 것이 아닌가 돌아보면서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쌓아 올린 경력과 그에 비례하는 월급을 생각하면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운 좋게 취미가 본업보다 두각을 나타내어 수입이나 명예의 비중이 더 커지거나, 혹은 하고 있는 일에 일말의 미련도 없을 때 우리는 전직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창업과 개인 브랜딩을 필수처럼 말하는 시대.
사회적인 발전과 목표가 아닌, 개인 삶의 질과 성취감이 더 중요해진 요즘의 이직은 선택지가 너무 많아 더 힘들다.
사실 나의 경우 인생을 길게 잡아 90이라고 생각했을 때, 어떠한 수입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건 불과 1년 전쯤이다.
맴돌던 생각을 구체적인 계획으로 만들어야 겠다고 결심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데에만 1년이 걸린 셈이다.
지금 나의 문제는 그 목표를 향해 어떤 실천을 해야하는지, 잘게 쪼개어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목표를 정확하게 세우는 일일 것이다.
내 업무적 목표는 이 회사에서 좀 더 높은 연봉과 직책을 얻고 장기근속하는데에 있지 않다.
인생에서 일을 하고 살아야한다면, 그것은 경제적인 수입을 얻어야 한다는 이유일텐데
인생의 질을 향상시키면서-다시 말하자면 여유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경제적 수입을 얻을 수 있는 활동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현재 나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