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연극 : 변태 (140502)
[부산] 연극 : 변태 (140502)
극단 인어
한소영役 : 이유정 / 민효석役 : 장용철 / 오동탁役 : 김귀선
인생을 오래 산 사람들은 얼굴에 인생이 보인다고들 말한다.
모습이 바뀌는 것을 일컫는 명사 '변태'.
극은 일상적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 시인 민효석의 책방을 배경으로 불을 밝힌다.
시를 가르친다는 것.
그 애매모호한 경계선에서 내뱉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이고 상념적인 단어들.
생활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효석의 그럴듯한 재주들은 내 주변에서 너무 익숙히 보던 것들이어서 슬펐고,
그가 의도적으로 흘린 부스러기들을 주워 담아 투박하지만 순수한 표현들로 쏟아내는 오동탁의 시를 듣는 건
입에 넣기 좋은 크기로 썰리는 고기처럼 어딘지 불편하고, 어딘지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 지성인의 위치에서 동탁을 내려다보는 효석에게 부족한 경제관념과,
경제적 풍요 속에서 지성적 갈증을 해결하고자 하는 동탁의 결핍은
각자의 지점에서 이상과 현실을 대변하듯 끊임없이 대립하고,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극은 모든 것을 가지게 된 동탁의 이야기는 조금 미뤄두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효석 부부를 각자의 사정으로 그려낸다.
홍일점이자 히로인인 소영역의 이유정 배우는
무대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어 불이 꺼지면 스러지듯 사라질까 걱정될만큼 저돌적으로, 격정적으로 한 여인을 말해주었다.
적절한 강약조절로 일상이 비현실적인 악몽으로 바뀌는 순간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을 만큼.
전개 자체는 일상적으로 시간이 흐르는 느낌이었지만
말(言)들은 쌓여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일그러지고 어긋나는 감정들이 흘러가는 모양새를 눈에 선명할만큼 느낄 수 있었고,
마지막을 향해 가는 캐릭터들의 감정에 가속도가 붙는 게 느껴졌다.
크지 않은 공간에서 점진적으로 변해가는 그들의 마음을 그린 듯이 볼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역량이 단단하고 넓었기 때문이리라.
생각과 말과 행동이 켜켜이 쌓여 주름이 되고 빛과 그늘이 되는 사람의 얼굴과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모양새.
극은 소영의 마음을 더 가까이서 들여다본 느낌이었는데,
한 여인의 마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선택을 통해 여태까지의 자신을 찢고 나오는지 선명하게 읽혀,
가슴 한구석을 아릿하게 만든 극이었다.
19금 연극이라 긴장하고 봤지만 야한 느낌은 아니었다.
20대 초반의 연애경험이 작은 젊은이들이 봤으면 좀 야했으려나(..)
남자들의 야동 이야기나 야동의 신 이야기나 그런 것들은 진짜 그냥 황당해서 웃겼는데
여자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성적인 이야기가 무겁게 하나의 자아가 변해가는 과정을 담아내서 오히려 진중하게 봤다.
여배우가 무대 위에서 상의를 탈의하고, 자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었을텐데
감정선 한 번 안 흐트리고, 막판엔 신들린 사람처럼 연기해 준 이유정배우님.
서울 극단이라 다시 볼 가능성이 희박하긴 하지만, 다른 역할로 다시 또 만났으면 좋겠다.
※ 본 후기는 과거의 관극으로 날짜를 제목에 함께 표기하고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