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앉아/순간의기억

[관극후기] 190806 : 파 한 단, 두부 한 모

최반유 2019. 8. 13. 00:05

 

[관극후기] 파 한 단, 두부 한 모

작강연극제 극단 누리에 출품작

 

 

 

 

 

 

시놉시스

우리 세대와 가장 닮은 부부가 등장한다.

비정규직 부부는 자본주의 사회의 산물에 늘 관심이 있다.

이들은 높지 않은 소득 수준을 가지고 있지만,

소위 부유층의 문화를 동경한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일반적이기 때문에 불안정한 구성원이다.

겨를 없이 살아가던 중 조짐을 보이던 빈곤은

아내의 임신 소식으로 그들을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정호-이태성 / 선영-이희선

연출-강성우 / 기획-강봉금 / 조연출-정재희 / 무대감독-김아라 / 조명디자인-김철현, 조경수 / 무대제작-고현우, 우지현 / 음향OP-김채윤

 

프란츠 크사버 크뢰츠 <오버뢰스터라이히> 원작

 

 

 

 

 

 

가난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행복은 창을 열고 도망간다.

오래된 이 속담만큼이나 오랫동안 반복되는 평범한 사람들이 여기 있다.

 

우리는 보통 수준의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는 <우리>는 한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판매와 배달을 업으로 삼고 사는 부부 정호와 선영이다.

 

식당에서 가격 때문에 비싼 메뉴를 못시키지만 먹고 싶은 티를 내선 안 되고, 어디선가 본 듯한 음식을 집에서 흉내 내어 먹으며 요리 실력이 꽤 늘었다고 뿌듯해하고, 그마저도 직접 구운 스테이크에 아스파라거스 대신 파를 곁들여 먹는 그들은 집도, 차도, 가구도, 취미생활도 할부로 사는 인생이다.

 

하지만 이왕 나누어 지불하는 것들을 좀 더 좋은 것으로 바꾸고 싶은 욕망은 끊임없이 더해지고, 애써 외면하며 현실 속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던 그들에게 생각지 못한 아이가 생기게 된다.

 

달뜬 얼굴로 아이를 가졌다고 고백해오는 선영과, 걱정으로 무거워진 얼굴로 좀처럼 기쁜 척도 할 수 없는 정호.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일상은 사사건건 대립하며 빠르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는 90년대 내 부모의 신혼시절을 보는 기분이었던 극.

극 중반 임신을 깨달은 이후부터 줄곧 아이를 낳을 거라며 고집부리는 선영이, 위태롭게 지속되는 현실을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며 낙태를 강요하는 정호가, 서로를 향해 내뱉는 대사들에서도 꽤 옛날 영화나 드라마가 떠올랐다.

 

손발이 묶일까봐, 생활이 힘들어질까봐, 내 인생이 이대로 아이와 하나로 묶여 그대로 가라앉을까봐, 수없이 많은 것들을 걱정하고 포기해야 함을 현재의 우리는 안다. 사회적인 제도나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임신한 인간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으며, 그리하여 한자리수 이하로 낮아진 출산율을 들이밀며 출산을 강요하는 사회도 안다.

출산을 하지 않는 이들이 해결책이라고 내놓는 것들에 대한 걱정을 선영이 했더라면, 아이를 지우기 위해 책임져야할 목숨이 산모의 목숨임을 정호가 걱정했더라면, 이 극이 좀 더 현재의 현실에 가깝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극의 후반부, 뱃속 아이에게 너는 우리와 다르게 살거야라고 말하는 선영이 우리의 부모가 우리를 낳으며 했던 생각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에 더욱 그런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문득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엄마의 의지로 태어난 아이는,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할 일이 더 많은 선영 당신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지 덜컥 겁도 났다.

결국 인생은 결정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만드는 이 이야기 속 남녀는 내일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고민과 물음을 던진다. 무엇이 잘 사는 것일까, 우리는 과연 우리의 선택에 온전하게 책임질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연을 좀 더 즐기기 위한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

이 공연의 마지막 선영이 읽는 기사를 그저 그들의 해피엔딩을 위한 장치로 넘기지 말 것.

번화한 도시의 공장에서 일하는 듯 하던 그들은 사투리로 극 내내 이야기를 주고받고, 기사 속 남녀의 주소는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라는 알 수 없는 한 시골의 주소를 던져준다. 원작인 오버뢰스터라이히 또한 독일의 한 시골 마을 이름. 목 졸려 죽은 여자와, 낙태를 강요한 남자는 과연 신문기사 속 사건에서 존재한 것일까.

 

우리는 끝내 내 것이 아니게 되면 그것이 누구의 일인지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